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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중 문화는 약점이라 지적되던 것도 장점으로 승화 시키는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해 왔다. 일명 막장 드라마도 <아내의 유혹> 이후 발전을 거듭해서 막장만의 매력을 뿜어내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빠순이 문화라 폄하되던 아이돌 문화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점령했으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 구석구석으로 향하는 중이다. 아이돌, 막장 드라마 만큼이나 더 광범위하게 자리한 신파는 영화, 순수 소설, 대중 소설, 드라마, 만화 할 것 없이 감정 과잉을 지적하는 비평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단어이었다. 생각해보면 신파는 우리나라 전통과는 꽤 거리가 먼 정서라 할 수 있는데 조선 양반 문화에서는 절제를 중요시 여겼고 대중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해학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슬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지만 서럽고 슬픈 감정의 과잉은 우리 현대 창작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 소설, 드라마가 서양으로 진출했을 때 가장 많이 지적 받는 부분이 또한 이런 감정의 과잉이다. 그리고 사실 한국 창작자들이 가장 잘 만들기도 한다. 독자와 관객의 눈물만큼은 기가막히게 뽑아낸다. 오직 슬픔이란 감정을 뽑아 내기 위해 온갖 도구들이 동원되고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이어 감정을 폭발하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이야기 창작의 현대적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심지어 문체 하나만으로 감정의 폭발을 이끌어낸다. 대한민국에서 연기 좀 할려면 우는 연기를 못해서는 안된다. 2017년 <역적>에서 김상중의 오열은 정점에 이른 우리나라 배우들의 우는 연기의 수준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나라의 신파는 그 정점을 찍고 부유해진 삶과 더불어 점차 해학과 섞이고 있다. 2017년 <역적>은 여러모로 곱씹어 볼 점이 많은 드라마이다. 김상중의 걸출한 연기, 안예은의 뛰어나고 독창적인 OST와 더불어 해학과 신파를 엮어 완전히 독창적인 홍길동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폭군아래에서 신음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통해 시청자들의 콧물, 눈물을 쏙 빼는가 하면 전통적 해학의 전통을 따라 홍길동 무리들의 재기 넘치는 복수극을 통해 웃음을 안겨준다. 또한 로맨스 씬에 관한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한국의 드라마 제작자들답게 길동과 가령의 사랑을 아름답게 담았다. 기승전로맨스라는 비난을 듣는 한국 드라마이지만 <역적>은 <도깨비>와 더불어 그것이 발전하고 발전하면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2018년 대한민국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전직, 전전직 대통령 모두가 재판과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갑질과 성희롱, 성폭력 등 한국 사회 깊숙이 자리해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공개적으로 쟁점화 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모두 터져나와 쟁점화 되고 있다. 심지어 지난 주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이런 시대에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기란 쉽지 않지만 tvN의 <나의 아저씨>는 이런 바쁜 와중에도 한번 쯤 눈 돌려 볼만한 스토리를 제공한다. 이 드라마 또한 한국 판<미투운동>의 후폭풍을 맞았다. 캐스팅된 오달수가 성폭력 사건에 연루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나의 아저씨>는 반 정도의 분량을 미리 제작했음에도 후반부 촬영 일정을 맞추지 못해 휴방을 결정해야했다. 최적의 상황은 아니지만 <나의 아저씨>는 한국의 웰메이드 드라마 계보를 이어갈 작품인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시각적인 면에서 이 드라마는 뛰어난 촬영술을 보여준다. 영화만큼의 영상미는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이 이 드라마의 장점이면서 제작 기간을 못 맞추게 하는 원흉이 되고있다. 이 드라마의 두번째 장점은 신파와 해학의 접목이라는 <역적>의 성공을 다시 가져왔다.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이지안, 박동훈의 이야기를 전통 신파극으로 만들었다면 아마도 볼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의 삶이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그 청승은 2000년대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지안, 박동훈 삶은 처절하지만 보는 우리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할 수 있는 이유는 드라마가 제공하는 해학이 한마디로 웃프기 때문이다. 삶의 고단함도 공감하면서 드라마가 제공하는 위안도 함께 받는다. 분명 찢어지게 슬프지만 펑펑 울지는 않는다. 이지안과 박동훈 사이의 감정 변화도 매우 섬세하다. 한국 드라마의 기승전로맨스가 아주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연애질은 하지 않는다. 감초 수준의 로맨스가 이런 처절한 스토리에서 어떤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지 보는 것도 아주 흥미롭다.
모든 면에서 훌륭한 드라마이지만 특히 작가와 두 주연 이선균, 이지은의 활약이 돋보인다. 조악하다 못해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를 양산하는 현시대에 보기 드물게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귀와 가슴에 쏙쏙 박히는 대사들은 이 드라마를 품위있게 만들어준다. 이선균은 드라마 속 신구의 말대로 '억울하게 생긴 사람' 박동훈 역에 아주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이지은은 심지어 이름도 비슷한 드라마 속 이지안이라는 옷에 안성맞춤이다. <달의 연인>에서 아주 이쁘게 나왔지만 이 배우는 이쁜 관상용 배우가 아니다. 이쁘고 고운 역할을 벗어 났을 때 이지은이라는 사람이 배우로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이 드라마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지은이라는 배우가 연기 했기 때문에 이지안의 처절함이 처절하지 않을 수 있다. 모순 같지만 이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배우가 필요하다. 이지안 역은 관상용 여배우들 같이 아주 이뻐서도 안되고 아주 처량해서도 안되는데 요즘 같이 특징없이 찍어 나오는 배우들이 즐비한 때에 가장 캐스팅하기 어려운 캐릭터일 수 있다. 지금 연기하는 이지은을 뺀다면 김태리 정도만이 떠오른다. 이지은이 배우로서 김태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지만 이 드라마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게 특출나게 캐릭터를 소화해 내고 있다. 또한 이름 값과 얼굴이 필요한 이 드라마의 간판 배우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한국 드라마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OST라고 볼 수 있다. 왠만한 가수들 앨범들보다 훨씬 충실한 것이 드라마 OST이고 한국 드라마의 완성도는 OST의 완성도에 있다고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핵심 장면에서 찰떡같은 음악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이희문의 <그 사나이>, 손디아의 <어른>, 고우림의 <백만송이 장미>, 제휘의 <Dear Moon>, 김민승의 <무지개는 있다>은 드라마 진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옥의 티라면 이지은의 달리기 솜씨이다. 이력서 특기란에 달리기라고 쓸만큼 이지안은 달리기를 잘하는 캐릭터이지만 우리가 <효리네 민박>에서 보았듯이 이지은은 달리기 솜씨가 형편없다. 이지은의 다리가 너무 가녀려 달리기 씬이 나오면 다리가 부러질까 위태위태해 보인다.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쓸데없는 일 잘하기로 유명한 소위 한국 여성 운동가들에게 방영전 부터 뭇매를 맞은 작품이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아저씨가 아가씨를 돕는 게 아니다. 아가씨가 아저씨를 돕는다. 이런 인물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여기에서도 소위 여성 운동가들이 얼마나 삽질하고 있는지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운동가들은 당장 나가서 성폭력, 강간법의 법적 제재 수위를 높이고 낙태의 합법화를 주장해야 한다. 이전 글에서도 섰지만 대리모 문제의 법제화도 시급하고 꼭 필요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대체 이제껏 이 사람들이 제대로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참으로 한심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몇년전 영화 포스터만 보고 리뷰하던 미친 블로거가 있었는데 이들도 제목만 보고 소설쓰는 거라면 그 블로거랑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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